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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황혼에 울려 퍼진 마지막 노래
1977년 파리의 고즈넉한 아파트,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페라 디바 마리아 칼라스(안젤리나 졸리 분)는 생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건강 악화로 무대를 떠나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다시 노래하고 싶은 열망이 뜨겁습니다. 그녀는 환각 속 인터뷰어와 대화를 나누며 지난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젊은 시절 세계를 매혹시킨 황금기의 기억, 사랑했지만 상처로 남은 연인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의 추억이 교차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과 회상의 경계가 흐려지고, 마리아는 스스로를 향한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창문을 활짝 연 채 부르는 마지막 아리아로 자신의 삶을 노래하며, 고독했던 디바의 생은 찬란한 여운과 함께 막을 내립니다. 죽음마저 예술로 승화시킨 그녀의 마지막 노래는 파리 하늘 아래 긴 여운을 남깁니다.
마리아 칼라스의 고독과 그녀를 지탱한 사람들
전설적인 디바 마리아 칼라스는 이 영화의 중심에 서서 깊은 고독과 열망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찬사를 받았던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목소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지만 마지막까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자존심을 놓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한때 그녀의 전부였던 연인 오나시스의 배신과 상실감은 마리아 내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환영처럼 나타나고, 이는 그녀의 외로움을 더욱 부각합니다. 그런 마리아 곁에는 충직한 집사 페루치오와 따뜻한 가정부 브루나가 있습니다. 페루치오(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 분)는 약과 휴식을 권하며 끝까지 주인을 걱정하는 인물로, 브루나(알바 로르바허 분)와 함께 마리아를 가족처럼 보살펴 줍니다. 이들의 헌신은 무너져가는 디바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관객에게는 마리아가 그나마 혼자가 아니었다는 위안을 줍니다. 또한 마리아의 환각 속 젊은 감독(코디 스밋맥피 분)은 사실 그녀가 복용하는 약이 빚어낸 환상으로, 현실과 환상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마리아 자신의 내면 목소리로서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고, 진심을 이끌어내는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은 이렇게 마리아 칼라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얽혀들며, 디바의 외로움과 인간적인 면모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그 결과 관객은 전설 뒤에 감춰진 한 여인의 고독과 그녀를 지탱해 준 사랑과 우정의 의미를 곱씹게 됩니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연출과 깊이 있는 테마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이 작품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독특한 연출을 선보입니다. 영화는 마리아 칼라스의 말년을 그리면서, 때때로 과거 회상 장면을 흑백 화면으로 표현하고 마리아의 환각 인터뷰 장면을 통해 실제 인터뷰 다큐처럼 연출하는 등 현실과 환상을 교차시킵니다. 이러한 기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마리아의 내면세계로 깊숙이 들어가게 하고, 그녀의 기억과 심리를 더욱 생생하게 체험하게 만듭니다. 특히 환상 속 인터뷰 장면은 마치 무대 위 독백처럼 느껴져 작품에 오페라적인 색채를 더해줍니다. 라라인 감독은 앞서 영화 스펜서와 재키에서도 역사적 인물의 심리를 섬세히 그려낸 바 있는데, 이번 마리아에서도 사실과 허구를 직조하여 전설적인 인물의 초상을 그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작품의 테마 역시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공공의 우상 ‘라 칼라스’와 한 인간 마리아 사이의 간극을 영화는 섬세하게 다룹니다. 한때 모두의 사랑을 받았지만 결국 혼자가 되어버린 그녀의 삶은 예술가의 영광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처럼 다가옵니다. 마지막 무대에서 자신만을 위한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은, 평생을 무대에 바친 예술가가 비로소 자신을 위해 부르는 노래로 해석되며 깊은 울림을 줍니다. 현실에서 빛을 잃어가던 마리아가 예술 속에서 영원히 빛나는 순간을 연출한 감독의 손길은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오페라를 보는 듯합니다. 결국 영화 마리아는 화려하지만 쓸쓸했던 디바의 내면을 통해 예술과 삶, 영광과 고독의 의미를 관객에게 묻고 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의 완벽 변신과 연기 앙상블
안젤리나 졸리는 이 영화에서 마리아 칼라스 그 자체로 숨 쉬는 듯한 연기를 선보입니다. 실제 마리아 칼라스의 음성과 몸짓, 표정을 연구한 듯 그녀는 전설적인 디바의 우아한 자태와 날카로운 감정선까지도 섬세히 표현해 냅니다. 오페라 가수를 연기하기 위해 7개월간 발성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만큼 졸리는 혼신을 다해 배역에 몰입했고, 그 결과 커리어 최고의 연기라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무대 위에서 환호받던 모습부터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아 괴로워하는 장면까지, 그녀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마리아의 영광과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아리아를 부르는 클라이맥스에서 졸리가 보여주는 열연은 숨소리 하나까지 관객을 사로잡으며 뭉클한 감동을 안깁니다.
주변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의 앙상블 역시 훌륭합니다. 이탈리아 배우 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는 묵직한 존재감으로 페루치오의 헌신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마리아와의 믿음직한 유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알바 로르바허가 연기한 브루나는 따뜻한 미소와 눈빛으로 마리아를 보살피는 모습이 인상적이며, 짧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관객의 마음을 울립니다. 환영처럼 나타나는 오나시스 역의 할룩 빌기너는 중후한 연기로 마리아의 과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젊은 감독(만드락스) 역의 코디 스밋맥피는 호기심 어린 표정 뒤에 숨은 쓸쓸함을 표현해 내며 극에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더합니다. 이처럼 배우들 모두가 조화를 이루어 완벽한 연기 앙상블을 선사하고, 각자의 역할을 통해 마리아 칼라스의 이야기에 깊이를 부여합니다. 관객으로서는 실제 인물들이 스크린 위에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며, 이는 오롯이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본 뒤, 마음에 남은 여운
영화 마리아가 끝난 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할 만큼 진한 여운이 마음을 감쌌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아리아가 고요히 멈추고 찾아온 정적은 마치 공연이 끝난 후 울리는 박수 소리 대신 깊은 숙연함으로 다가와 가슴을 저릿하게 합니다. 한 인간의 삶이 이렇게도 아름답고 쓸쓸하게 그려질 수 있다는 데 감탄하면서도, 그녀가 느꼈을 고독과 열정을 생각하니 먹먹한 감정이 밀려옵니다. 비록 오페라에 대해 잘 몰라도, 영화는 관객을 자연스럽게 마리아의 세계로 이끌어 그녀의 감정에 동화되게 만듭니다. 화려한 무대 뒤에 숨겨진 눈물, 사랑받았지만 결국은 고독했던 한 여인의 초상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마치 잔잔한 오케스트라의 여운처럼 극 중 마리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합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그려낸 마리아 칼라스의 모습은 단순한 전기의 재현을 넘어, 한 예술가의 영혼을 이해하게 해주는 창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부르던 *“예술을 위해 살았다(Vissi d’arte)”*라는 노래의 한 구절처럼, 관객인 저 역시 예술과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슴 깊이 스며드는 영화 한 편을 만났다는 기쁨과 함께, 마리아가 선사한 감동은 제 마음속에 한 편의 아름다운 오페라처럼 영원히 자리할 것입니다.